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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정신없이 사는 와중에도 (진짜 말 그대로 정신없이!!) 

일련의 세상의 흐름이 무의식적으로 패턴으로 느껴질 때가 간혹 있는데, 역시 재작년부터는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로봇의 일련의 흐름이었다. (굳이 패턴으로 느껴질 것도 없이 너무도 드러나는 흐름이었지만)

(credit: Warner Brothers)(credit: Warner Brothers)

기계가 인간을 초월하는 순간 - 특이점이 온다, The Singularity is near로 유명한 Ray Kurzweil옹께서 Google의 Think Tank로 초빙되시고, 이어지는 구글의 로봇 기업들 연쇄인수.

기술발전의 Cutting edge의 그 칼날 제일 앞에선 Elon Musk의 인공지능 경고

미드 Person of Interest에서 보여지는 대테러용 빅데이터 분석 AI가 전지전능한 힘을 가져가는 모습들

SF세계에서야 흔하게 나오던 이야기들이었지만, 최근 몇년동안 대중문화를 통해 보여지는 특이점을 벗어난 인공지능의 모습들, Transcendence 나 Spike Jonez감독의 Her ,  특히나 작년 HER에서의 모습은 뭔가 이제 본격적인 때가 되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피부로 와닿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 - 그래봐야 여전히 십수년은 넘게 걸리겠지만.

엇 커즈와일옹께서 직접 HER Review 하신 게 있었네 + 우리말 번역

이런 문화 작품만이 아닌, 2015년 부터는 본격적으로 공중파 티비 시사 다큐멘터리에도 면밀히 소개가 될 정도였는데..  KBS의 로봇혁명, 미래를 바꾸다. - KBS치고는 의외로 최신의 관련 소식들을 잘 정리해줘 참 도움이 되었다.

공중파 다큐멘터리를 넘어 시사팟캐스트 노유진의 정치카페에도 소개가 될 정도이니, 확실히 레이 커즈와일 옹께서 누누히 강조하시는 특이점이 그날이 이제는 그리 멀지 않은 것 같아, 과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초등학교 입학한 이래 매년 고민해 오던 주제이지만) 머릿 속 생각을 정리해 보기 위해, 포스트를 시작해 본다.

아, 생각을 정리하기 전 아시모프 선생님의 걸작 하나 먼저 읽고.. to be continued (모르긴 몰라도 종국엔 이렇게 되지 않을까 수억만년 지난 후엔..ㅎㅎ)



최후의 질문 - 아이작 아시모프, 1956

최후의 질문이 반 농담으로나마 처음 던져진 것은 인류가 광명을 향해 막 첫걸음을 내디딘 2061 년 5월 21일이었다. 질문은 칵테일 잔을 사이에 둔 5달러짜리 내기의 결과였고,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쳐 이루어졌다.

알렉산더 아델과 버트램 루포브는 멀티백의 성실한 조작원들이었다. 다른 모든이처럼 그들도 수마일에 걸친, 차갑게 불빛을 번쩍이며 딸깍거리는 소리를 내는 그 거대한 컴퓨터의 껍데기 속에 무엇이 있는지 잘 알지는 못했다. 그들은 한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정도를 훨씬 넘어선 컴퓨터의 회로 구성을 대충 이해하고있을 뿐이었다. 멀티백은 스스로 수리하고 관리하는 컴퓨터였다. 멀티백은 인간이 직접 수리하고 관리하기에는 너무도 복잡하고 거대한 컴퓨터이기에 이는 당연한 일이었다. 때문에 아델과 루포브는 이 엄청난 거인에 대해 피상적인 지식밖에는 가질 수 없었다. 그들은 컴퓨터에 데이터를 입력하고, 컴퓨터가 읽어 낼 수 있도록 질문을 수정하며 컴퓨터가 낸 대답을 인간의 언어로 번역하였다. 물론 그들은 멀티백이 이루어 낸 성과에 대한 영예를 동료들과 함께 향유할 수 있었다.

지난 수십 년간 멀티백은 인류가 달, 화성, 금성에 도달할 수 있도록 우주선의 설계와 탐사 계획을 도와 왔다. 그러나 그보다 더 멀리 갈 수 있는 우주선을 제작하기엔 지구의 자원이 불충분했다. 장기간의 여행에는 에너지가 너무도 많이 소모되었다. 화석 연료와 우라늄의 이용 효율을 높이는 방법이 연구되었으나, 그 매장량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멀티백이 서서히 이 어려운 문제에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고, 2061년 5월 14일에 드디어 이론이 현실화된 것이다. 지구전체가 마음껏 쓰고도 남을 만한 태양 에너지를 한꺼번에 저장하고 여러 가지 형태로 변환하여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인류는 석유나 석탄 같은 화석 연료와 우라늄의 사용을 중단하고, 태양 에너지 변환기를 지구와 달의 중간 지점에서 지구를 돌고 있는 지름 1마일의 인공위성에 연결시켰다. 이제 지구 전체가 보이지 않는 태양 에너지 광선에 의해 움직였다.

일주일에 걸친 축제에도 그 열기가 완전히 식지 않았기 때문에 아델과 루포브는 간신히 공공행사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들은 멀티백의 본체가 숨겨져 있는 지하실에 숨었다. 그들이 거기에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데이터를 정렬하는 듯 느리게 딸깍거리는 멀티백도 마치 휴가를 받은 것처럼 만족스러워 보였다. 그들은 처음에는 멀티백의 휴식을 방해하고픈 생각이 없었다.그들은 술병을 하나 들고 왔으며, 그들의 관심은 한잔 하면서 긴장을 푸는 것뿐이었다.

"정말 대단해."

아델이 입을 열었다. 멀티백의 커다란 얼굴은 피로로 인해 주름져 보였다. 아델은 술잔 속의 얼음을 무심히 쳐다보며 유리막대로 잔을 저었다.

"에너지를 영원히 공짜로 사용할 수 있다니. 지구를 몽땅 녹여서 쇳물로 만들더라도 거기에 사용될 에너지를 아까워할 필요가 없잖아. 이젠 공짜로 에너지를 영원히 영원히, 또 영원히 쓸 수 있겠지."

루포브는 머리를 옆으로 비스듬히 기울였다. 루포브는 반대하고 싶을 때면 즉시 핑계거리를 생각해 내는 재주가 있었고, 또 지금은 그가 얼음과 잔을 가지러 왔다갔다해야 하기 때문에 약간 심술이 나 있었다.

"영원한 건 아니지."

"이런, 제기랄, 거의 영원하다고 할 수 있잖아. 태양이 없어질 때까지는 말야."

"그건 영원한 게 아니야."

"맞아. 하지만 수십 수백억 년이 지난 다음이라구. 한 백억 년 정도? 그럼 됐나?"

루포브는 얼마 안 남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술을 홀짝거렸다.

"백억 년은 영원한 게 아니야."

"적어도 우리 시대는 지탱할 수 있잖아?"

"화석 연료와 우라늄만으로도 우리 시대는 지탱할 수 있어."

"맞아. 하지만 이젠 우주선을 태양 스테이션에 연결시키기만 하면 명왕성까지 수없이 왕복하더라도 에너지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 화석 연료나 우라늄을 사용한다면 불가능한 일이지. 믿지 못하겠다면 멀티백에게 물어 보라구."

"멀티백에게 물어 볼 필요는 없어. 나도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

"그럼 멀티백이 한일을 자꾸 깎아내리지 말라구. 멀티백은 아주 멋지게 일을 처리해 냈단 말야."

아델이 발끈해서 말했다.

"누가 뭐래? 난 단지 태양이 영원히 지탱하지는 못한다고 말했을 뿐이야. 그게 내가 말한 것의 전부라구. 우리는 백억 년 동안은 무사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 다음엔?"

그렇게 말한 루포브는 상대방을 향해 손가락을 흔들어 보였다.

"또 다른 태양을 이용하면 된다고 대답하진 말라구."

둘 다 잠시 조용해졌다. 아델은 때때로 잔을 입술로 가져갔고, 루포브의 눈은 서서히 감겼다. 그들은 쉬고있었다. 갑자기 루포브가 눈을 번쩍 떴다.

"우리 태양의 수명이 다하면 다른 태양으로 바꾸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지, 그렇지?"

"그런 생각 한 적 없어."

"아니, 틀림없이 했을 거야. 넌 논리에 약한 것이 문제야. 너는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소나기를 만나자 나무 밑으로 몸을 피한 사람과 비슷해. 알다시피 그사람은 전혀 걱정을 하지 않았지. 나무가 젖어서 비가 새기 시작하면 다른 나무밑으로 가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무슨 소린지 알겠어. 그러니까 그렇게 소리지르지는 말라구. 태양의 수명이 다할 때면 다른 별들의 수명도 다할 거라 이거지?"

"물론 그렇겠지. 대폭발로 시작한 우주는 모든 별의 수명이 다 할 때 끝나는 거야. 일부는 다른 것들보다 수명이 빨리 다하겠지. 거성들의 수명은 1억 년도 채 안돼. 태양은 백억 년을 지탱할 테고 난쟁이 별들은 길면 2백억 년 이상을 살아남을 거야. 하지만 1조 년이 지나고 나면 모든 것이 어둠 속에 잠기겠지. 엔트로피는 최대에 달하고. 그럼 모든 것이 끝이야."

"엔트로피에 대해서는 나도 알아."

아델이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시겠지."

"네가 알고 있는 정도는 나도 안다구."

"그럼 언젠가는 모든 것의 수명이 다한다는 사실도 알겠네?"

"물론이지. 누가 아니래?"

"네가 그랬잖아, 이 멍청아. 우리가 필요한 에너지를 영원히 얻을 수 있다며?  영.원.히."

이번엔 아델이 반대하고 나설 차례였다.

"언젠가는 우리가 물질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도 모르지."

"절대로 못 해."

"안 될 게 뭐야? 언젠가는 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안 돼."

"할 수 있을지 없을지 멀티백에게 물어 보자."

"좋아, 멀티백에게 물어 봐. 할 수 없다는 쪽에 5달러 걸겠어."

아델은 취해 있었지만 다음과 같은 뜻의 문장을 멀티백이 알아 들을 수 있도록 번역하여 입력할 수는 있었다.

<언젠가는 늙어서 수명이 다한 태양에게 에너지의 소비 없이 젊음을 되찾아 줄 수 있게될까?>

이 문장은 간단하게 이렇게 번역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우주 전체의 엔트로피 총량이 대량으로 감소될 수 있을까?>

멀티백은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천천히 반짝이던 불빛은 아예 꺼져 버렸고 딸깍거리는 소리도 멈추었다. 겁에 질린 기술자들이 더 이상 기다릴 수 없게 된 순간에 멀티백에 연결된 텔레타이프가 활기차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출력된 결과는 겨우 네 단어에 불과했다.

<자료 부족으로 대답이 불가능함.>

"내기는 무효가 되었군."

루포브가 속삭였다. 그들은 급히 바깥으로 나왔다.

다음날 아침, 숙취로 인해 머리가 쿡쿡 쑤시고 입안이 깔깔해진 그들은 어제의 사건을 금세 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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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드와 제로딘 그리고 제로뎃 I.II는 초공간을 통과했다는 문구가 비지플레이트에 나타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즉시 미세한 분말처럼 깔려 있던 별들의 모습이 화면에서 사라지고 구슬 정도 크기의 밝게 빛나는 원반이 하나 나타났다.

"저게 X-23이야."

제로드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뒷짐을지고 있던 자신의 마른 손에 힘을 주었다. 여자아이인 제로뎃들은 초공간 여행을 처음 경험하였기 때문에, 안에서 바깥 쪽으로 빨려나가는 듯하던 그 짜릿하고 흥분된 순간을 되새기고 있었다. 그들은 웃음을 멈추고 엄마의 주위를 빙빙돌며 외쳤다.

"X-23에 도착했대요! X-23에 도착했대요! X-23에......"

"조용히 해, 얘들아!"

제로딘이 날카롭게 말했다.

"확실해요, 제로드?"

"저 녀석이 실수하는 걸 본 적 있어?"

제로드는 천장 바로 아래에 불쑥 튀어나온 멋없는 금속 상자를 보며 말했다. 그것은 방을 가로질러 양쪽 벽면 끝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금속 상자의 길이는 우주선 전체의 길이와 거의 비슷했다. 제로드가 마이크로백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질문을 하면 대답해주고, 사람이 질문을 하지 않는 동안에는 미리 정해진 목적지로 우주선을 조종해 가는 역할을 하며, 여러 곳에 퍼져 있는 준 은하급 발전소로부터 에너지를 공급받고, 또 초공간 점프를 위한 방정식을 계산한다는 정도였다. 그 밖에는 이 두꺼운 금속상자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제로드와 그의 가족은 단지 우주선의 편안한 거주 지역에 살면서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누군가 제로드에게 마이크로백(Microvac)이라는 단어의 마지막 두 글자가 고대영어로 <자동 컴퓨터 Automatic Computer> 라는 뜻이라고 말해 준 적이 있었지만, 그는 그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다. 비지플레이트를 바라보는 제로딘의 눈은 촉촉히 젖어 있었다.

"어쩔 수가 없네요. 지구를 떠날 때는 무척 재미있을것 같았는데......."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제로드가 물었다.

"지구에 남겨둔 것은 하나도 없잖아. 우리 것은 모두 X-23에 있을 거야. 당신은 혼자도 아니고, 개척자가 되는 것도 아니잖아. 그 행성에는 이미 백만이 넘는 사람이 살고 있어. 제기랄, 우리의 고손자는 X-23의 인구 밀도가 너무 높아져서 딴 행성으로 이주하게 될거라고."

생각을 하느라 말을 멈추었던 그는 잠시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이것 보라구. 이렇게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는 시대에 컴퓨터가 항성간 여행을 가능하게 한 것은 정말 행운이란 말야."

"알아요, 안다구요."

제로딘이 울먹이며 말했다. 제로뎃 I이 즉시 말을 받았다.

"우리 마이크로백은 세상에서 제일 좋은 마이크로백이에요."

"나도 그렇게 생각한단다."

제로드가 제로뎃 I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마이크로백을 소유하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고, 제로드는 자신이 그의 아버지 세대나 그 밖의 다른 세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을 고맙게 생각했다. 그의 아버지가 젊었을 때에는 한 대뿐인 컴퓨터가 백 제곱마일이나 되는 공간을 차지했다. 각 행성에는 컴퓨터가 오직 한대뿐이었다. 그들의 이름은 <행성 AC>였다. 컴퓨터의 크기는 거의 천 년 동안 꾸준히 커지다가 갑자기 엄청나게 작아졌다. 트랜지스터 대신 사용하게 된 분자밸브 덕택에 가장 큰 <행성 AC>라 하더라도 우주선의 절반 정도 크기로 축소될 수 있었다. 제로드는 자신의 마이크로백이 태양을 처음으로 길들였던 고대의 원시적인 멀티백보다 몇 배나 우수하고, 초공간 여행 문제를 처음으로 해결하여 항성간 여행을 가능케 한 지구의 <행성 AC>(가장 대규모였던)와 거의 비슷한 성능을 지니고 있다는데 은근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생각에 잠겨 있던 제로딘이 한숨 지으며 말했다.

"별도 많고 행성도 많으니까 미래의 가족들도 우리들처럼 영원히 새로운 행성을 찾아 나서겠네요."

제로드가 웃으며 대답했다.

"영원히는 아니지. 언젠가는 끝나. 수십억 년이 걸리겠지만 말이야. 당신도 알다시피 별들도 언젠가는 수명이 다하거든. 엔트로피는 계속 증가하고."

"아빠,엔트로피가 뭔데요?"

제로뎃 II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엔트로피란 우주의 수명을 나타내는 단어란다, 얘야. 너도 알다시피 모든 것이다 자신의 수명이 있지않니? 네가 가진 걷고 말하는 꼬마 로봇을 생각해 보려무나."

"로봇처럼 파워 유닛을 갈아 끼우면 안 되나요?"

"별들이 바로 파워 유닛이란다. 별들의 수명이 다하면 더 이상의 파워 유닛은 있을 수 없지."

제로뎃 I은 즉시 비명을 질렀다.

"안 돼요, 아빠! 별이 죽는 것은 싫어요."

"참 잘하셨네요."

분개한 목소리로 제로딘이 속삭였다.

"애들이 겁을 먹을 줄 어떻게 알았겠어?"

제로드가 다시 속삭였다. 제로뎃 I이 구슬프게 말했다.

"마이크로백에게 물어 봐요. 어떻게 하면 별을 도로살릴 수 있는지 물어 보세요."

제로딘이 말했다.

"빨리 물어 보세요. 그래야 애들이 조용해지겠어요."

제로뎃 I이 울자 제로뎃 II도 덩달아 울기 시작했다. 제로드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자, 얘들아, 내가 마이크로백에게 물어 보마. 걱정하지 말아라. 마이크로백이 어떻게 하면 되는지 가르쳐 줄 거야."

그는 마이크로백에게 질문을 던진 다음 재빨리 덧붙였다.

"대답은 인쇄하도록."

제로드는 얇은 셀룰로이드 필름을 움켜쥐고는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얘들아, 때가 되면 마이크로백이 모두 알아서 할 수 있다는구나. 그러니 걱정하지 말거라."

제로딘이 말했다.

"그리고 이젠 잘 시간이 되었단다. 곧 새 집에 도착하게 될 거야."

제로드는 셀룰로이드 필름을 없애 버리기 전에 다시한 번 읽어 보았다.

<자료 부족으로 대답이 불가능함>

그는 어깨를 으쓱거린 다음 비지플레이트를 쳐다보았다. X-23이 바로 눈앞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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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메스의 VJ-23X는 소규모 3차원 은하계 지도의 어두운 내부를 응시하면서 말했다.

"이 문제를 이렇게까지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니크론의 MQ-17J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당연히 심각한 문제지. 알다시피 지금 같은 속도로 인구가 증가한다면 5년 안에 은하계 전체가 꽉 차고 말 거라구."

그들 둘은 모두 키가 크고 잘생긴 젊은이들이었다. 20대 초반정도 되어 보였다.

"하지만 아직도 난 비관적인 보고서를 은하 의회에 제출한다는 게 망설여져."

VJ-23X가 말했다.

"다른 보고서를 제출할 수는 없어. 보고서가 한 글자라도 바뀐다면 전체 내용이 엉망이 되어 버릴 거야."

VJ-23X는 한숨을 쉬었다.

"우주는 무한히 넓어. 비어 있는 은하계의 수는 천억개도 넘는다구."

“천억 개는 무한한 것도 아니고 시간이 흐르면 점점 그 숫자가 줄어들어. 생각해 보라구! 인류가 최초로 항성 에너지를 이용하는 방법을 알아낸 것은 2만 년 전이었고, 항성간 여행이 가능해진 것은 겨우 몇백년 전이야.  인류가 최초로 한 행성을 가득 메우는 데는 백만 년이 걸렸지만, 은하계의 나머지 부분을 채우는 데는 1만 5천 년밖에 걸리지 않았어. 이제 인구는 10년마다 두 배로 늘어나고...…"

VJ-23X가 말을 가로막았다.

"그건 우리들이 영원히 살 수 있기 때문이지."

"맞아. 이제는 죽는 사람들이 없지. 하지만 죽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문제가 더욱 커지는 거야. 은하 AC는 인류를 위해 정말 많은 일을 해냈어. 하지만 노화와 죽음을 방지하는 방법을 개발했기 때문에 다른 모든 업적을 망쳐버렸다구."

"하지만 너도 죽고 싶지는 않겠지?"

"물론 죽고 싶지는 않아."

MQ-17J는 대뜸 대답한 자신이 부끄러운지 목소리를 낮추었다.

"죽고 싶지는 않지. 아직은 젊으니까. 넌 몇 살이지?"

"223살. 너는?"

"난 아직 2백 살도 안 돼. 음, 본론으로 돌아가자구.  인구는 10년마다 두 배로 늘어나. 우리 은하계가 가득찬 다음에, 다른 은하계를 가득 채울 때까지는 10년이 걸릴 거야. 다시 10년이 지나면 4개의 은하가 가득 찰테고, 백 년 뒤면 천 개의 은하계가, 천 년 뒤엔 백만개가 넘는 은하계가 가득 차겠지.  그렇게 1만 년이 지나면 현재까지 알려진 모든 우주에 인간들이 넘치게 돼. 그럼 그다음에는 어떻게 하지?"

VJ-23X가 말을 받았다.

"부수적이지만 이주할 때도 문제가 있어. 한 은하계에서 다른 은하계로 그렇게 많은 사람을 이주시키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태양에너지 유닛이 필요할까?"

"좋은 지적이야. 인류는 이미 해마다 두 개씩 태양에너지 유닛을 소모하고 있다구."

"그중 대부분은 낭비되고 있지. 하지만 우리 은하계만 보더라도 해마다 천 개의 태양 에너지 유닛이 새로 생성되고 있어. 우리가 사용하는 것은 그중 겨우 두개뿐이란 말야."

"옳은 얘기야. 하지만 100퍼센트의 효율로 에너지를 사용하더라도 종말을 단지 지연시킬 수만 있을 뿐이야. 우리의 에너지 소모량은 인구 증가 속도보다 더 빨리 증가하고 있거든. 이주할 은하계가 없어지는 것보다 먼저 에너지를 모두 소모해 버리겠지.  좋은 지적이야. 정말 좋은 지적이라구."

"성간 가스를 가지고 새로 별을 만들면 되지 않을까?"

"아니면 분산된 열을 한군데로 모아도 되겠지."

MQ-17J가 비웃는 것처럼 말했다.

"엔트로피를 역전시킬 방법이 틀림없이 있을 거야. 은하 AC에게 물어 보라구."

VJ-23X는 반농담으로 한 말이었으나, MQ-17J는 정말로 그의 AC호출기를 주머니에서 꺼내 책상 위에 올려 놓았다.

"해봐서 나쁠 것은 없겠지. 인류가 언젠가는 마주쳐야 할 운명이니까."

MQ-17J가 말했다. 그는 엄숙하게 자신의 조그마한 AC호출기를 쳐다보았다.

그것은 모서리 길이가 2인치에 불과한 육면체로 그 자체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공간을 초월하여 모든 인류에게 봉사하는 거대한 은하 AC에 연결되어 있었다. 초공간 자체가 은하 AC의 일부분으로 통합되어 있는것이다. MQ-17J는 언젠가 은하AC를 보게 될 날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잠시 머뭇거렸다. 은하 AC는 과거에 사용되던 분자 밸브를 대신하여 중간자 회로들을 거미줄처럼 연결하는 역장으로 구성된 하나의 세계였다.  그러나 그 구성 단위가 원자보다 작음에도 불구하고 은하AC의 반경은 3백미터가 넘었다. MQ-17J는 그의 AC호출기를 향해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

"엔트로피는 역전될 수 있는가?"

VJ-23X가 당황하며 말했다.

"이것봐, 정말 물어 보라고 한 소리는 아니었어. 농담이었다구."

"물어 봐서 나쁠 것도 없잖아."

"엔트로피가 역전될 수 없다는 것쯤은 알잖아. 연기와 재로부터 나무를 만들어낼 수는 없어."

"네가 사는 곳에는 나무라곤 한 그루도 없는데, 그건 또 어떻게 알았니?"

MQ-17J가 말했다.

그들은 은하 AC의 목소리가 들리자 겨우 조용해졌다.책상 위에 놓인 조그마한 AC호출기로부터 들려오는 은하 AC의 목소리는 가늘면서도 아름다웠다.

<자료 부족으로 대답이 불가능함.>

“그것 보라구!"

VJ-23X가 말했다. 두 남자는 다시 은하 의회에 제출해야 하는 보고서를 두고 입씨름을 벌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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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 프라임의 정신은 가루처럼 널리 퍼진 별들을 세며 새로운 은하계를 향하여 뻗어 갔다.  이 은하계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과연 모든 은하계를 다 돌아볼 수 있을까? 모든 은하계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하지만 행성의 표면에 존재하는 그들의 육체는 거의 죽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거의 모든 인간의 정신이 육체를 벗어나 우주에 머무르기 시작했다. 육체를 벗어난 정신만이! 불멸의 육신은 이제 끝없는 세월을 행성의 표면에서 헤매고 있었다. 인간들이 때때로 자신의 육체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것도 점점 드물어졌다. 새로이 태어나 믿을 수 없으리만치 위대한 대열에 함께 서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문제될 것은 없다. 현재 존재하는 사람만으로도 이미 우주는 비좁았다. 치 프라임은 또 다른 정신을 만나 겨우 자신의 공상에서 깨어났다.

"나는 치 프라임이라고 합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는 디 서브 운입니다. 당신은 어느 은하계에 삽니까?"

"우리는 그저 은하계라고 부릅니다. 당신은요?"

"우리도 우리 은하계를 그저 은하계라고만 부릅니다. 사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사는 은하계를 은하계라고만 부르죠. 그래서 나쁠 것은 없지요."

"맞습니다. 사실 모든 은하계는 다 똑같으니까요."

"모든 은하계가 다 똑같지는 않지요. 인류가 처음으로 태어난 은하계가 있습니다. 그 은하계 만은 특별하죠."

"어느 은하계인지 아십니까?"

치 프라임이 물었다.

"글쎄요. 전 모르겠군요. 하지만 우주 AC가 알 겁니다."

"그러면 우주 AC에게 물어 볼까요? 갑자기 궁금해지는군요."

치 프라임은 은하계 자체를 넓은 바다에 떠 있는 먼지 한 점처럼 여길 정도로 사고를 확장시켰다. 수천억이 넘는 은하계마다 우주를 자유로이 떠도는 정신과 그 정신이 한때 깃들어 있던 불멸의 육체가 함께 존재했다. 그러나 오직 한 은하계만은 인류가 발생한 은하계라는 이유로 특별했다. 수천억의 은하계 중 하나가 아주 먼 과거에 유일하게 인류가 살고있던 은하계였다. 치 프라임은 호기심에 가득 차 이 은하계를 보고 싶다는 소망을 말했다.

"우주 AC여! 어느 은하계에서 인류가 처음으로 발생하였는가?"

우주 AC는 모든 세계와 모든 우주에 걸쳐 퍼져있는 자신의 수신기를 통해 이 말을 들었고, 각 수신기는 초공간을 통하여 우주 AC가 존재하는 미지의 장소로 연결되어 있었다. 치 프라임은 유일하게 우주 AC가 존재하는 곳까지 자신의 사고를 확장시킬 수 있었던 사람이 한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우주 AC는 지름이 70센티에 불과한 빛나는 구체여서, 알아보기조차 힘들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작은 물체가 어떻게 우주 AC가 될 수있소?"

치 프라임이 물었었다.

"우주 AC의 대부분은 초공간에 존재합니다. 초공간에서 우주 AC가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지요."

또한 치 프라임이 알고 있기로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우주 AC를 만들거나 개량하는 데 관여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각 우주AC는 자신의 후계자를 스스로 설계하고 제작했다. 각 우주 AC는 또한 자신이 존재했던 백만 년 혹은 그 이상의 기간 동안 축적된 정보를 모아 더욱 개선되고 우수한 후계자를 만들어 자신이 모아두었던 정보를 넘겨주고 자신도 그 일부로 흡수되곤 했다. 생각에 잠겨 있던 치 프라임은 우주 AC가 응답을 시작하자 정신을 차렸다. 우주AC는 아무 말도 않고 대신 한줄기 빛을 보내왔다. 치 프라임의 정신은 은하계들의 바다를 지나 한 은하계로 집중되는 빛을 따라갔다. 무한히 먼 곳에서 무한히 맑은 생각이 전달되어 왔다.

<이것이 인류가 발생한 은하계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다른 은하계와 별다른 것이 없었기 때문에 치 프라임은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를 따라온 디 서브 운이 갑자기 물었다.

"인류가 처음으로 태어난 별은 어느 것인가?"

우주 AC는 간단하게 답했다.

<인류가 태어났던 별은 폭발하여 신성(新星)이 되었다가 지금은 하얀 난쟁이 별이 되었습니다.>

"거기에 살던 인간들은 모두 죽었는가?"

치 프라임이 놀라서 생각해 보지도 않고 물었다. 우주 AC가 말했다.

<그런 경우에는 새로운 별을 만들어 그들의 육체를 옮겨 둡니다.>

“아, 그렇지."

그러나 치 프라임은 알지 못할 상실감이 자신을 압도해 오는 것을 억제할 수 없었다. 그의 정신은 인류가 태어난 은하계를 벗어나, 그것이 흐릿한 은하계 바다의 한 점으로 사라질 때까지 뻗어나갔다. 그는 그것을 다시는 보고 싶지않았다. 디 서브 운이 물었다.

"뭐가 잘못됐습니까?"

"별들은 죽어 가고 있습니다. 인류가 태어났던 별은 이미 죽었구요."

"별은 죽게 마련이죠. 그게 뭐 잘못됐나요?"

"하지만 모든 에너지가 사라지고 나면, 우리의 몸도, 당신과 나도, 결국 별들과 함께 소멸되고 말 겁니다."

"그건 수십억 년 뒤의 일이잖소?"

"설혹 수십억 년 뒤의 일이라도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은 참을 수 없습니다. 우주 AC여! 어떻게 하면 별들이 죽지 않을 수 있는가?"

디 서브 운이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지금 엔트로피를 역전시킬 방법이 있는지 묻고 있는 겁니다."

곧이어 우주 AC가 답했다.

<아직 자료가 부족하여 대답할 수 없습니다.>

치 프라임의 정신은 자신의 은하계로 돌아갔다. 그는 더 이상 디 서브 운과 노닥거리고 싶지 않았다. 디 서브 운이 1조 광년 밖의 은하계에서 기다리고 있는지 혹은 치 프라임의 별 바로 옆에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건 문제가 아니었다. 기분이 몹시 상한 치 프라임은 성간 가스를 끌어 모아 직접 조그마한 별을 하나 만들어 보았다. 별들이 죽어 가더라도, 새로운 별을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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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이제 인간은 정신적으로 하나가 되었다. 수백 수천억 년을 살아온 그의 몸은 방해 받지 않는 행성의 지하에서 기계의 보호를 받으며 조용히 쉬고 있었고, 또한 모든 육체에 깃들어 있던 정신은 하나로 합쳐져 이제 더 이상 구별할 수 없었다. 인간이 말했다.

"우주는 죽어 가고 있다."

인간은 침침한 은하계를 둘러보았다. 거성들은 이미 오래 전에 사라져 우주에서 가장 침침한 먼지의 일부로 변했다. 남아 있는 거의 모든 별들은 죽음을 향해 치닫고 있는 하얀 난쟁이 별이었다. 저절로 생기거나 인간이 직접 만든 별들이 우주 먼지로부터 생성되곤 했지만, 그것들도 이미 죽어 가고 있었다. 하얀 난쟁이 별들간에 충돌이 일어나 거대한 힘이 해방되면 새로운 별이 태어나곤 했지만, 천 개의 하얀 난쟁이별이 죽어 갈 때마다 하나꼴로 새로운 별이 태어났고 그나마도 이젠 끝나갔다. 인간이 말했다.

"코스믹 AC의 도움을 받아 주의 깊게 사용한다면 우주의 에너지는 앞으로도 수십억 년간 더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모든 것이 끝나고 말 것이다. 아무리 아낀다 하더라도 한번 사용한 에너지는 사라지고 다시는 복구될 수 없다. 엔트로피가 극대를 향하여 영원히 증가하기 때문이다."

"엔트로피를 반전시킬 수는 없을까? 코스믹 AC에게 물어 보도록 하지."

코스믹 AC는 인간을 감싸고 있었지만 우주에 존재하지는 않았다. 코스믹 AC는 초공간에 존재하고 있으며, 물질도 에너지도 아닌 것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크기와 본성에 대한 의문은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는 전혀 표현할 수 없었다.

"코스믹 AC여. 엔트로피는 얼마나 역전될 수 있을까?"

인간이 물었다. 코스믹 AC가 대답했다.

<아직 자료가 부족하여 대답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말했다.

"그렇다면 자료를 수집하라."

코스믹 AC가 말했다.

<나는 자료를 계속 수집할 것입니다. 나는 이미 천억년이 넘는 기간 동안 자료를 수집해 왔습니다. 내 선임자와 나는 이 문제를 여러 번 질문 받아왔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자료가 충분치 않습니다.>

"엔트로피를 역전시킬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할 수 있는 날이 오는가? 아니면 이 문제는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것인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보를 모두 갖추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 것인가?"

<자료가 부족하여 대답할수 없습니다.>

"해답을 찾기 위한 작업을 계속할 것인가?"

<물론입니다.>

인간이 말했다.

"기다리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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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과 은하계들이 죽어서 희미한 먼지로 변해 갔다. 우주는 10조 년에 걸친 멸망과정을 지나 점점 어두워졌다. 인간은 하나씩 AC와 결합하고, 그들의 육체는 손실이라기보다는 획득의 과정을 거쳐 정신적인 정체감을 잃어갔다. 인간의 마지막 정신은 증발하기 전에 잠시 우주 전체를 통하여 하나밖에 남지 않은 어두운 별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낮은 밀도로 퍼진 물질들을 둘러보았다. 여기저기에 남은 미소한 열의 흔적이 점점 사라져 가면서 모든 우주는 절대 영도를 향하여 치닫고 있었다.

인간이 말했다.

"AC여, 이것이 끝인가? 이 혼란이 극복되어 원래의 우주로 돌아갈 수는 없는가? 그것은 진정 불가능한 일이었다는 말인가?"

AC가 말했다.

<아직 자료가 부족하여 대답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마지막 정신은 사라져 갔고 AC만이 남았다. 초공간의 내부에. 물질과 에너지의 시대가 종말을 맞이하자 공간과 시간도 함께 사라졌다. AC만이 10조년 전에 반쯤 취한 기술자들이 처음으로 질문을 한 이래 인간이 끊임없이 물어왔지만 한 번도 응답하지 못했던 최후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하여 남아 있었다. 다른 모든 문제는 해결되었으나, 최후의 질문에 응답하기 전까지는 자신의 작동을 중지시키지 않을 작정이었다.

수집할 수 있는 정보는 결국 한계에 다다랐다. 수집할 정보가 더 이상 남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수집된 정보는 아직 완전히 수정되지도 않았고 각 정보들 사이에 가능한 모든 관계를 조사해야 했다. 이 일을 하는데 무한한 간격(시간은 존재하지 않았으므로)이 소모되었다. AC는 마침내 엔트로피의 방향을 역전시킬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냈다. 하지만 AC가 최후의 질문에 대답해 줄 인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없었다. AC가 직접 시행해 보일 해답은 그 문제도 해결할 수 있었다. 또다시 무한한 간격을 소모하면서 AC는 해답을 시행할 최선의 방법을 모색했다. AC는 주의 깊게 프로그램을 작성했다. AC의 의식은, 한때는 우주였으나 지금은 혼돈으로 화한 것에 집중되었다. 작업은 한 단계씩 차근차근 진행되어야 했다.

마침내 AC가 말했다.

.

.

.


.

<LET THERE BE LIGHT 빛이 있으라.>

그러자 빛이 있었다...




The Last Question by Isaac Asimov, 1956


Books at 2015. 2. 10. 01:17

바티칸 교황청까지 아직 3천광년이나 떨어져 있었다. 신이 창조한 자격이 있다고 굳게 믿어온 것처럼, 나는 한때 이 광활한 우주도 신앙의 위대한 힘은 어쩔 수 없으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역시 신의 영광을 받고 탄생했을 어느 피조물의 운명을 알게된 뒤, 그동안 흔들림없이 지켜왔던 나의 믿음은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지금 우주선 객실 안(마크 6) 컴퓨터 위에 걸린 예수의 십자가상을 바라보면서, 난생 처음으로 저것은 그저 공허한 상징물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닐까 하는 회의에 잠겨 있는 것이다.

아직 아무에게도 이 얘기를 꺼내지는 않았지만, 나 스스로를 속이거나 할 수는 없다. 문제의 자료들은 끝없이 긴 마그네틱 테이프와 수천 장의 사진에 담겨 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다른 과학자들은 손쉽게 그 자료들을 분석해 낼 것이다. 그리고 또한 나는 기독교 신학사의 오점으로 남아 있는 몇몇 기록들처럼 그 자료들에 담겨 있는 진실을 왜곡하거나 숨기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다른 승무원들도 허탈한 심정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난 그들이 도대체 이 엄청난 아이러니를 과연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했다. 물론 그들 중에는 신앙을 갖고있지 않은 사람도 있었지만, 설사 그렇다고 해도 내게 무신론을 주장하면서 차마 이 일을 거론하지는 못할 것이다.

우주선 안에서는 지구를 떠나는 순간부터 비록 사사롭고 어디까지나 점잖은 것이지만 꽤나 심각했던 유신론과 무신론의 대립이 있었다. 우주선의 수석천체물리학자인 내가 예수교(Jesuit)의 신부라는 사실은 그들 무신론자 승무원들에겐 몹시 재미있는 일이었던 모양이었다. 특히 선내의사인 챈들러 박사같은 경우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태도를 나타냈다. (대개 의사들은 왜 그렇듯 철저한 무신론자일까?) 이따금 나는 그와 관측실에서 마주치곤 했다. 관측실은 조명이 어둡기 때문에 바깥의 별빛들이 마치 무한한 영광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곳이었다. 그는 어둠 속에서 조용히 내 곁으로 다가와서는, 찬란한 별빛으로 가득찬 창밖을 말없이 바라보곤 했다. 몸으로는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우주선이 천천히 자전하고 있었으므로 창 밖의 우주는 조금씩 흐르고 있었다.

"저어, 신부님."

그는 머뭇거리다 말을 꺼내곤 했다.

"저 우주는 이제껏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아마 영원히 존재해 나가겠지요. 그리고 분명히 무언가가, 또는 누군가가 이 우주를 창조했을 겁니다. 그렇지만 당신은 어떻게 해서 그 창조주가 우리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고 믿으십니까? 과연 창조주가 이 보잘것 없는 우리를 각별히 돌보아 주겠습니까? 솔직히 저는 이 점이 가장 궁금합니다."

논쟁은 이렇게 시작하기 마련이었다. 창밖에는 수많은 별들과 성운들이 우주의 침묵 속에서 천천히 우리를 스쳐가며 지켜보고 있었다. 이러한 일은 승무원들에겐 심심치 않은 화제거리가 되었지만, 사실 나는 매우 곤혹스런 입장이었다.

나의 논문이 [천체물리학회지]에 세 편, 그리고 [왕립천체물리학회보]에 다섯 편이나 수록되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나를 예수교 신부로만 여길 뿐, 과학자로는 대접하지 않았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는 오랜 동안의 연구 생활과 학문적 업적이 나를 저명한 과학자로 알려지게 했다는 사실을 말하곤 했다. 물론 성직자가 동시에 뛰어난 과학자인 경우는 드물지만, 18세기이후 나와 같은 인물들이 천문학과 지구물리학에 기여한 바를 고려해 보면 그 적은 수에 비추어 보아 결코 과소평가할 만한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 내가 [불사조(Phoenix)]성운에서 얻은 자료를 가지고 돌아가면, 과연 수천년에 걸친 기독교의 역사는 종말을 고하고 말 것일까?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난 그보다 더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처음에 그 성운에 그런 이름을 붙인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른다. 그렇지만 몹시 어울리지 않는 이름임엔 틀림없다. 만약 그 이름에 어떤 예언적인 의미가 담겨있다 하더라도, 적어도 앞으로 수십억년 동안은 입증될 수가 없을 것이다. 심지어는 [성운]이란 말조차도 오해될 여지가 있다. [불사조]성운은 글자 그대로 우주에 퍼져있는 거대한 먼지 구름이 아니라, 아주 작디 작은 잔해에 불과하다. 성운이란 원래 은하계 구석구석에 흩어져 있는 먼지 구름들을 의미하는 말이다. 장차 태어날 별들의 원재료가 되는 이 거대한 먼지 구름들과는 달리, [불사조]성운은 우주적인 규모에서 바라보면 정말로 아주 작은 존재에 불과한 것이다.

그것은 어느 별의 주변을 감싸고 있는 엷은 가스막에 지나지 않았다. 또는 이전에 한때 별이었을지도 모를 흔적이거나.....

분광측정기의 관측기록들을 놓아 둔 곳 위 벽에, 루벤스가 조각한 로욜라(예수교의 창시자)의 상이 나를 비웃듯이 내려다 보고 있다. 성인이시여, 당신이 겪은 세상은 이 우주에서 지극히 작은 일부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하여 그처럼 깊은 신앙 세계를 만들어 내셨나이까? 당신이 이룩한 신앙이 나의 모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나의 신심은 몹시도 흔들리고 있습니다. 정녕 우리의 신앙에 위기가 닥친 것입니까?

당신꼐서는 물론 세상을 널리 살펴보셨겠지만, 저는 당신이 천여년 전 처음으로 예수회를 세울 때 상상했던 세계보다도 훨씬 더 멀고 색다른 곳들을 여행했습니다. 이처럼 먼 곳까지 날아왔던 지구의 탐사선은 한 척도 없습니다. 인류가 뻗어나가고 있는 우주에서 우리들은 최선두에 서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불사조] 성운으로 진로를 잡아 마침내 도달하는 데 성공했고, 이제 다시 지구로 돌아가는 귀로에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중입니다. 전 솔직히 그 십자가를 벗어버리고 싶지만, 그저 속절없이 당신의 이름만을 되뇌이고 있습니다. 당신과 나 사이에 가로놓인 일천 년의 시간과 수천 광년의 거리를 둔 채.

당신이 들고 있는 책에 새겨진 글이 보입니다.

[하나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AD MAJOREMDEI GLORIAM: 예수회의 모토)]

그러나 이제 저는 더 이상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발견했던 것들을 당신도 보셨다면, 그래도 당신의 신앙은 흔들리지 않았을까요?

물론 우리들은 [불사조]성운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었다. 은하계 안에서만 해도 일년에 백여개가 넘는 별들이 푹발하는 것을 관측할 수 있다. 보통 때보다 수천배나 밝아진 채로 몇 시간에서 길게는 며칠 동안을 빛나다가 이윽고 폭발한 잔해들이 흩어지면서 우주의 암흑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흔히 우리들이 신성이라고 말하는 이러한 별의 최후는 우주에서는 다반사로 벌어지는 일상적인 일들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달의 천문관측소에서 일하고 난 뒤부터도 이러한 현상을 열 번이 넘게 관측하여 분광사진자료로 기록해 왔다. 그러나 3백 년, 또는 4백 년에 한번 꼴로 신성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매우 밝게 빛나는 별이 나타날 때도 있다.

이것은 이른바 수리샛별(초신성)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아주 잠깐이긴 하지만 자기가 속한 은하계 전체의 다른 모든 별들을 합친 것보다도 더 밝게 빛나는 수도 있다. 서기 1054년에 중국의 천문학자들은 당시 수리샛별이 나타났음을 기록으로 남겼다. 물론 그들은 자신들이 본 것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다. 그로부터 5백년 뒤, 1572년에 카시오페아 자리에서도 수리샛별이 나타나 밝게 빛났다. 그 별은 너무나도 밝았기에 대낮에도 보일 정도였다. 그 뒤에도 모두 세 변에 걸쳐 수리샛별이 관측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우리 탐사대의 임무는 그런 별의 잔해를 찾아서 폭발과정을 거슬러 추정해보고, 가능하면 그 원인까지도 알아내는 것이었다. 우리는 둥그렇게 겹겹이 싸여 있는 가스층을 천천히 통과하여, 이미 6천년전에 폭발했지만 아직도 팽창을 계속하고 있는 [불사조]성운의 중심부로 다가갔다. 가스층의 온도는 매우 뜨거웠고 강력한 자외선까지 내뿜고 있었지만 우리들에게 피해를 줄 정도는 아니었다. 별이 폭발하게 되면 표면을 덮고있던 외곽층은 별의 인력을 뿌리치고 우주공간으로 날아가 버리게 된다. 그리하여 태양계보다 수천배나 큰 거대한 가스구가 되어 폭발한 별의 잔해를 들러싸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폭발하여 불타버린 잔해들 가운데엔,우리가 백색왜성이라고 부르는 환상적인 별이 생겨나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이 하얀 난장이별은 지구보다도 작은 크기이지만, 질량은 오히려 수백만 배나 더 나가는 밀도가 매우 높은 별이다.

우주선 주변을 둘러싼 가스층들은 밝게 빛나면서 우주공간의 영원한 밤을 서서히 몰아내주었다. 우리들은 우주의 시한폭탄이 폭발한 잔해 한가운데로 계속 접근했다. 폭발은 수천년 전에 발생했지만 그 잔해와 가스들은 아직도 눈부신 불꽃을 내며 계속 우주공간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워낙 천문학적인 규모의 엄청난 폭발로 말미암아 이미 파편들은 수십억 마일이 넘는 거리를 날아갔기 때문에, 육안으로 느낄 수 있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아마 10년 정도는 계속 지켜보고 있어야 겨우 파편의 움직임이나 가스층이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그런 폭발의 규모는 상상만 해도 너무나 압도적인 것이었다.

우주선의 추진장치들을 다시 한번 점검한 뒤, 우리들은 작지만 엄청난 인력을 가진 중심부의 하얀 난장이별을 향해 천천히 나아갔다. 그 별은 한때 우리의 태양과 같은 평범한 항성이었지만, 폭발과 함께 단 몇 시간만에 모든 에너지를 발산하면서 그 잔해를 백만 년 정도 계속 흩뜨리게 되는 것이다. 마치 한순간에 날려버린 에너지들을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이, 지금은 잔뜩 웅크리고 있는 욕심장이처럼 조그마한 난장이별이 되어 있었다.

행성을 발견하게 되리라고는 그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다. 설사 별이 폭발하기 전에 그 주위를 도는 행성들이 있었다 하더라도 최초의 폭풍으로 이미 흔적도 없이 날아가 버렸을 것이며, 혹 찌꺼기가 남아있더라도 곧이어 닥친 별의 잔해들에 쓸려 온전하게 자리를 지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쨌든 우리들은 낯선 태양계에 접근할 때면 항상 그러듯이 자동 탐색장치를 가동시켰는데, 뜻밖에 매우 먼 거리에서 공전하고 있는 작은 행성 하나를 발견했다. 이 무명 행성은 우리 태양계의 명왕성처럼 쇠락해버린 이 별의 가장자리를 외롭게 돌고 있었다. 태양에서의 거리가 너무나도 멀었기에 생명이 피어날 수도 없었겠지만, 그 대신 파국의 운명으로부터는 구원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폭발의 화염은 이 행성의 표면을 불태우면서 이전에 행성의 표면을 덮고 있던 얼어붙은 대기층을 모두 우주공간으로 날려버린 듯했다. 우리는 그 행성에 착륙했고, 그리고 동굴을 발견했다.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동굴은 반드시 눈에 뜨이도록 되어 있었다. 동굴 입구에 세워져 있던 거대한 선돌은 별이 폭발할 때 윗부분이 녹아 무너져 내렸으나, 아무튼 우리가 그 행성에 접근하여 처음 찍은 사진을 보면 지성을 가진 어떤 존재가 구조물을 남겼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잠시 뒤 우리들은 광범위한 지역에서 방사능이 나오는 것을 포착했다. 그 방사선들은 지표 밑에 어떤 물체들이 파묻혀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설사 동굴 위에 세웠던 안내탑 같은 것이 날아가 버린다 해도, 이 방사능만큼은 절대로 없애버릴 수 없는 확실한 표식이 된다. 가없는 우주공간으로 언제까지나 퍼져나가는 메아리가 되는 것이다. 우리들은 우주선을 마치 과녁 한가운데 꽂히는 화살처럼 정확히 그 지점에 착륙시켰다.

동굴 입구의 안내탑은 아마도 처음 세워졌을 때에는 일 마일 정도의 높이를 가졌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본 것은 다 타고 녹아내린 양초처럼 바닥에 뭉개져 붙은 모습이었다. 마땅한 장비가 없었으므로 녹아붙은 암석을 뚫고 들어가는 데에는 꼬박 일주일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우리들은 대부분 고고학자라기보다는 천문학자였지만 아무튼 큰 어려움 없이 동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미 우리들은 애초의 탐사 목적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태양에서 엄청나게 먼 이 외딴 행성에 이처럼 방대한 유적을 남기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어었을 것이다. 이 외로운 유적이 의미하는 바는 따라서 오로지 하나뿐일 수 밖에 없다. 자신들의 태양이 머잖아 폭발할 것임을 미리 깨달은 어느 발달된 지성종족이, 스스로 문명과 문화와 존재의 흔적을 영원히 남기고자 최후로 건설해 놓은 거룩한 비명(碑銘)인 것이다.

동굴에 남아있는 모든 유적들을 낱낱이 조사하려면 아마도 앞으로 몇 세대 동안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듯 했다. 이들의 태양은 폭발하기 훨씬 전부터 이미 파국의 조짐을 드러내며 경고를 했을 것이므로, 유적을 건설한 자들은 그나마 넉넉한 준비기간을 가졌던 모양이었다. 그들이 보존하고자 하는 모든 것들과 그들의 지성이 남긴 모든 업적들을 종말의 날이 닥치기 전에 이 머나면 변경 행성으로 날라온 것이다. 누군가 다른 외계의 지성인들이 유적을 발견하기를, 이 우주에서 자신들의 존재가 영원히 잊혀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비장한 안타까움으로 이 유적을 남긴 것이다. 과연 우리 인류라면 어떻게 했을까? 이들처럼 흔적을 남기려 애썼을까? 아니면 스스로의 운명에 절망하여 체념한 나머지 결코 누려보지 못할 미래를 완전히 포기하고 말았을까?

그들에게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그들은 자신의 태양계 안에 있는 행성들로는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을 정도로 문명을 발달시켰지만, 안타깝게도 항성간의 머나먼 우주공간을 건너가기에는 기술이 부족했던 것이다. 게다가 그들과 가장 가까운 태양계는 100광년이나 떨어져 있었다. 하긴 항성간 우주 여행 기술을 개발했다 하더라도, 대피할 수 있는 사람은 기껏해야 몇 백만 정도였을 것이 오히려 그들로서는 다 같이 최후를 맞는 것이 덜 가슴아픈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조각 등에서 보이는 그들의 모습은 우리 인간들과 놀라울만큼 닮았지만 설사 그렇지 않았다 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그들의 문명에 감탄하고 또한 그들의 운명에 몹시 슬퍼했을 것이다. 그들은 수천 개의 화면기록 레코드와 영사장치를 남겨 놓았으며 섬세하게 그려진 그림들로 장치의 사용법을 설명해 놓고 있었다. 또한 그다지 어렵게 보이지 않는 그들의 문자로도 설명을 달아 놓았다. 우리들은 레코드들 중에서 여러 개를 직접 틀어 보았다. 근 6백여년만에 처음으로 빛을 보게 된 그 기록들은 그들이 여러모로 우리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따뜻한 종족이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아마도 그들은 자기네 문명의 좋은 면만을 모아다가 남겨놓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그 누구라도 흠잡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 점을 충분히 고려해 보더라도 그들의 세계는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평화와 행복이 충만했던 것 같았다. 그들의 도시는 어떤 인간이 보더라도 감탄할 수 밖에 없는 우아함을 지니고 있었다. 우리는 그들이 일하는 모습과 노는 모습을 보았으며, 여러 세기의 시간을 넘어 우리에게 들리는 그들의 음악소리같은 말소리들을 들었다.

한 장면은 아직도 내 뇌리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신비한 파란 색의 모래로 뒤덮인 해변가에서 지구에서처럼 한 무리의 아이들이 밀려왔다 밀려가곤 하는 파도와 어울려 노는 모습이었다. 마치 회초리처럼 생긴 신기한 나무들이 해안을 따라 줄지어 서 있고, 매우 커다란 동물 하나가 아무의 주목도 받지 않은 채 앝은 물에서 거닐고 있었다. 그리고 바다 속으로 점점 저물어가고 있는 태양이 있었다.그들에게 생명을 주고 언제까지나 친근하고 따뜻하게 감싸줄 것만 같았던 태양이 비치고 있었다. 그 태양이 어느날인가 무서운 배반자로 둔갑하여 이 순진무구하고 행복한 종족들을 일순간에 멸망시켜 버린 것이다.

우리들이 지구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있지만 않았어도, 그래서 향수에 민감한 상태만 아니었어도 그토록 깊게 감동을 느끼지는 못했을 것이다. 탐사대원들 중에서 상당수의 사람들은 이미 멸망해버린 외계문명의 유적같은 것을 접한 경험이 있었지만 이번처럼 강렬한 인상을 받은 경우는 없었다. 이 종족의 비극은 정말 특별한 것이었다. 지구에서처럼 어떤 나라나 민족이 흥하고 망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경우인 것이다. 지성을 가진 한 종족 전체가 생존자 하나없이 완전하게 멸절되어 버린 것이다. 그들이 쌓아 올린 모든 문명과 유산이 송두리째 사라져 버린 것이다. 도대체 이 일을 어떻게 하나님의 은총과 조화시켜 생각할 수 있단 말인가?

탐사대의 동료들은 내게 이 문제와 관련된 질문을 던졌고, 나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대답을 했다. 성인 로욜라시여, 아마 당신이라면 저보다 좀 더 나은 대답을 해 줄 수가 있었겠지요. 그러나 저는 당신이 남긴 책[심령수업 (Exercitia Spiritualia)] 에서 도움이 될만한 구절을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결코 악마의 종족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도 종교가 있었는지, 그리고 그렇다면 과연 어떤신을 섬겼는지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이제 수천년의 시간을 넘어 그들이 마지막으로 남겨놓은 그들 삶의 행복하고 사랑스러웠던 모습을 보고나니, 폭발해 버리고 만 그들의 태양이 다시 떠오르는 것처럼 감동이 북받쳐 오릅니다. 그들은 정말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왜 그들은 멸망해 버려야만 했습니까?

이제 지구로 돌아가면 동료들이 내게 뭐라고 할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우주는 애초부터 아무런 목적도, 아무런 계획도 없이 생겨난 것이며, 우리 은하계만도 일년에 백여개의 별들이 폭발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도 우주의 어느 한 구석에서 이름모를 외계 종족이 순식간에 죽음의 길로 치닫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 종족이 역사가 평화롭고 착한 것이었든 악행과 부덕으로 가득찬 것이었든 파국적인 종말을 맞는 데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이며, 처음부터 신이 심판하는 정의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결국 신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라고.

물론 우리가 본 것들은 그런 논의와는 수평적으로 연결시킬 수 없는 성격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어디까지나 감정적인 느낌으로 말하는 것이지, 엄정한 논리로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신은 자신의 행위를 인간에게 정당화시켜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 우주를 창조한 신은 자신의 선택에 따라 파괴를 할 수도 있다. 신의 피조물인 우리가 감히 신을 향해 그럴 수 있다, 없다고 따지는 것 자체가 오만한 태도이다. 신을 모독하는 행위에 가까운 것이다.

나는 애써 이런 식으로 받아들이려 했지만, 이 행복한 세계가 순식간에 불덩이 속으로 사라져 버린 사실을 냉정하게 받아들이기는 정말 힘들었다. 그러나 나의 신앙심이 저 깊은 곳에서부터 흔들리기 시작할 즈음, 계산 결과 한 가지를 앞에 놓고 나는 마침내 새로운 사실에 직면했음을 알게 되었다.

별이 폭발한 뒤 그 잔해가 퍼져나가 성운이 된 경우, 직접 그곳에 가보지 않고서는 과연 그 별이 언제 폭발한 것인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들은 [불사조]성운에 도달한 뒤, 치밀한 관측 결과와 외곽에 홀로 남은 외딴 행성의 암석들이 녹은 연대를 측정하여 그 별의 폭발시기를 매우 정확하게 추정해 낼 수 있었다. 나는 그 별이 폭발하는 섬광이 지구에는 과연 언제쯤 도달했는지 정확히 추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우주공간으로 희미하게 흩어져 버렸지만, 처음 지구의 하늘에 나타났을 때에는 얼마나 밝게 빛났을 것인지도 짐작할 수 있었다. 태양이 떠오르기 전의 동쪽 밤하늘에 아주 낮게 떠서, 마치 동방의 새벽을 알리듯이 아주 밝게 빛났을 당시의 그 별을 충분히 상상해 볼 수 있었다.

이젠 아무것도 의심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옛부터 내려오던 신비가 마침내 드러난 것이다. 오오, 하나님. 정녕 당신께서는 다른 수많은 별들중에서 하나를 택하실 수는 없었단 말입니까? 아기 예수가 태어난 곳을 찾아가다 길을 잃은 동방박사들에게 방향을 인도하기 위하여, 이 평화롭고 행복한 외계종족을 송두리째 파멸로 이끌면서까지 베들레헴의 밤하늘에 동방의 별이 빛나도록 만드셨단 말입니까?

* 참고: 이 소설의 부제는 `동방의 별'이라고 한다. *

http://cs.sungshin.ac.kr/~dkim/star.html

http://blog.naver.com/jihanj/120060378306


Books at 2013. 4. 8. 00:09

PXD UX Lab.에서 퍼 온 목록, 갈무리 해 놨다가 틈나는 대로 읽어보자!

UX 디자이너가 읽어야할 심리학 책 10가지 - 심리학 산책

1.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 세상을 뒤바꾼 위대한 심리 실험 10장면

- 로렌 슬레이터 지음 / 조증열 옮김


Opening Skinner's Box: Great Psychological Experiments of the Twentieth Century

- by Lauren Slater  


현대 심리학에서 중요한 전환점들을 만들어낸 주요 실험 연구 10가지에 대한 소개입니다.  심리학의 여러 연구 분야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전공자들을 고려한 첫 책으로 선정해 보았습니다.  또한, 연구 내용에 대한 소개뿐만 아니라 연구자 개인에 대한 이야기,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의 이야기 등 비하인드 스토리 등도 함께 다루고 있어서 흥미 있게 읽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실험이라는 방법론이 현대 심리학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는데, 그에 대한 이해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2.

보이지 않는 고릴라 : 우리의 일상과 인생을 바꾸는 비밀의 실체

- 크리스토퍼 차브리스,대니얼 사이먼스 지음 / 김명철 옮김


The Invisible Gorilla: And Other Ways Our Intuitions Deceive Us 

- by  Christopher Chabris and Daniel Simons


우리 인간이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밝히는 것이 심리학인데, 알고 보면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 잘 모르고 있습니다.  저자는 그런 점을 우리 자신에 대한 '착각'이라는 관점으로 가져와서 설명합니다. UX에 많은 부분 연관될 수 있는 주의(attention)와 기억, 지식, 원인 판단 등에 대해 다루면서도 '착각'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3.

상식 밖의 경제학 : 이제 상식에 기초한 경제학은 버려라

- 댄 에리얼리 지음 / 장석훈 옮김


Predictably Irrational: The Hidden Forces That Shape Our Decisions 

- by Dan Ariely


행동경제학은 이미 이 블로그에서 소개되었고, 또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계시죠. 경제와 관련된 많은 상황에서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은 때때로 '비합리적'으로 보입니다.  놀라운 점은 그런 점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통적이고, 그래서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다는 것이죠.  심리학이 경제학 분야와 맞닿은 접점이기 때문에 그 바탕이 되는 기초 심리학 자체보다 UX에 더 가깝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합니다.  



4.

생각에 관한 생각 : 우리의 행동을 지배하는 생각의 반란!

- 대니얼 카너먼 지음 / 이진원 옮김

 

Thinking, Fast and Slow 

- by Daniel Kahneman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심리학자의 저서로, 행동경제학의 출발이 된 내용입니다.  그래서 앞 책과 연결됩니다.  우리가 흔히 가지고 있는 상식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을 이해하는 데, 그리고 연관된 여러 분야 심리학(그리고, 이 목록의 다른 책들)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면서도 기초가 되는 개념들을 많이 다루고 있는 책입니다.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지만 읽으시면 많은 것을 얻으실 수 있습니다.  

 

 

5.

설득의 심리학

- 로버트 치알디니 지음 / 이현우 옮김


Influence: The Psychology of Persuasion 

- by Robert B. Cialdini


UX가 Usability 이상으로 확장해 나간다면 무엇을 다룰 것인가?   그 대답으로 저는 '사람들의 행동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을 들고 싶습니다.  행동경제학에도 그런 요소가 있습니다만, 이 책은 좀 더 본격적으로 '설득'을 다루고 있습니다.  


 

6.

DRIVE 드라이브 : 창조적인 사람들을 움직이는 자발적 동기부여의 힘

- 다니엘 핑크 지음 / 김주환 옮김


Drive: The Surprising Truth About What Motivates Us 

- by Daniel H. Pink


사람들을 행동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요소가 '동기'입니다.  UX가 Usability를 넘어서 사람들의 행동 자체를 바꾸는 방향으로 확장해 나간다면 꼭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7.

미디어 방정식

- 바이런 리브스, 클리퍼드 네스 지음 / 김정현, 조성민 옮김


The Media Equation: How People Treat Computers, Television, and New Media Like Real People and Places 

- by Byron Reeves and Clifford Nass


이 책은 CASA라는 중요한 Paradigm을 다루고 있습니다.  CASA는 사람-사람 관계가 사람-컴퓨터 관계에도 적용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UX 또는 HCI에 아주 커다란 의미가 있습니다.  사람  사이에서 작동하는 심리학이 컴퓨터(또는 컴퓨터처럼 지능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현대의 전자 제품과 서비스들)에도 적용된다는 중요한 발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사람들에 대한 심리학이 HCI로 확장되는 핵심 고리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8.

생각의 지도 : 동양과 서양, 세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

- 리처드 니스벳 지음 / 최인철 옮김


The Geography of Thought: How Asians and Westerners Think Differently...and Why 

- by Richard E. Nisbett


UX에 관련된 문제 중의 하나가 문화권에 따른 차이입니다. 한국의 사용자들은 미국의 사용자들과 같은가? 상식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어떻게 다른가에 대해서는 쉽게 답변하기 어렵습니다. 특정 상황에서의 차이점들은 사용자 조사를 통해인서 알게 되기도 하지만, 그것들의 근본 바탕은 무엇일까요?  이러한 의문에 힌트를 줄 수 있는 책입니다.  



9.

보이지 않는 차원 : 공간의 지각

- 에드워드 티 홀 지음 / 김광문,박종평 옮김 


The Hidden Dimension 

- by Edward T. Hall


공간적 환경이 우리의 심리와 행동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에 대한 책입니다. Proxemics라는 개념을 내세워 여러 가지를 설명하고 있는데, UX나 서비스 디자인에서 공간을 다루게 되는 일이 앞으로 더욱 많아질 것이고, 그럴 때 참고하면 좋을 내용입니다. 



10.

오래된 연장통 : 인간 본성의 진짜 얼굴을 만나다 

- 전중환 지음


진화심리학은 그 내용이 어떤 분야에 한정된 것은 아닙니다. 분야라기보다는 관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재 인간이 가지고 있는 심리적 매커니즘이 어떤 과정으로 만들어지게 되었는가를 다루는 것입니다. 진화가 신체 또는 육체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마음의 구조에도 적용된다는 뜻이죠. 이 전에 소개할 책들을 통해사람의 마음은 '어떻게' 움직이나에 대한 이야기들을 알게된다면, 그 다음 가지게 될 질문, '왜' 그렇게 움직이게 되었는가에 대한 답변을 제시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심리 매커니즘 자체보다는 관점을 이해하는 차원이기 때문에 진화심리학 분야의 여러 책 중에서 상대적으로 쉽게 읽을 수 있는 것을 골랐고, 결과적으로 우리나라 저자의 책이 되었네요.


Books at 2013. 1. 7. 23: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