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nti-Stuff :: Black Sheep Wall!

역시 designflux가 없어지면서 보관용으로 남기는 글입니다. 원출처는 designflux.co.kr 2008.03


디자인 왕국에 폭풍이 일고 있다. 기존 주류 디자인계에 대한 반발이 거세지고 있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그 저항의 중심에 디자인의 대가들이 있다는 것이다.

필립 스탁은 <아이콘> 잡지 10월호의 커버 기사에서 “나는 디자인을 살해했다(‘I killed design')”라는 선언으로 자신의 입장을 조심스럽게 드러냈다. 그리고 그 몇 달 전에는 신랄한 화법으로 유명한 영국의 디자인 평론가 스티븐 베일리(Stephen Bailey)가 <옵저버>에 실린 글에서 “난 ‘디자이너’란 말만 들어도 전기톱에 손을 뻗게 된다.”라고 부르짖었다.

기존 주류 디자인계로부터 이탈하려는 이러한 물결은 두 가지 주된 문제 의식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디자인이미디어의 유력 인사들과 커넥션을 맺고 있는 상황의 천박한 피상성에 대해 염증이며, 다른 하나는 ‘쓸모 없는 잡동사니’를만들어내는 디자인의 역할에 대해 점점 불쾌감이 더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비판적 견해는‘안티-플러프(Anti-fluff)’와 ‘안티-스터프(Anti-stuff)’라는 말로 압축될 수 있다.

안티-플러트(Anti-fluff)
이미 오래 전부터 광고 회사는 기존의 흐름에 반대하는 반-디자이너의 시대정신을 시도한 선발주자 중 하나였다. 2004년 영국의 광고회사 카르마라마(Karmarama)는 ‘이케아와 엘리트 디자이너의 대결(Elite Designers Against IKEA)’이란 제목의 연작 광고를 제작하였다. 이케아가 생산한 20달러짜리 저렴한 의자를 홍보하기 위한 이 광고에는 필립 스탁과 마르셀반더스의 역사적 사생아라고 할 만한 가상의 디자이너 판덴 푸프(Van den Puup)가 등장해 저렴한 이케아 가구에 대해분노를 표출한다.

또한 그 뒤를 이어 오글리비(Oglivy)는 포드 자동차 ‘포커스(Focus)’의광고에서 빡빡 머리에 짧게 턱수염을 기르고 거드름 피우는 인물을 등장시켜 디자이너를 풍자했다. 이 두 광고의 숨은 메시지는명확하다. 즉 대문자 'D'로 시작하는 디자인은 이미 시대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이케아나 포드가 겸손한 가격으로 민주적인디자인을 보급한다는 것이다.

버지니아 포스트렐(Virginia Postrel)은 그녀의 독창적인 저서 <스타일의 실체>에서 디자인이 어떻게 대중 시장의 우선적 요소가 되었는지를 설득력 있게 설명하였다. 디자인이 비즈니스 계에 순응하게 되면서 그에 따라 (어느 집단의 생활 양식 및 문화를 조사, 기록하는) 라이프스타일 잡지와 혁신이란 단어는 새로운 유행 상품(thenew black)이 되었다. 심지어 정부까지 이러한 흐름에 가담해왔다. 이를테면 이미 10년 전 영국에서 정권을 잡은 토니블레어의 신노동당은 국가 정체성부터 국민건강보험 제도에 이르기까지 전 영역의 혁신을 이끄는 ‘창조자’를 자임하였다.

어느 수준에서 볼 때는 이러한 저항은 엘리트주의자들의 오늘날 디자인의 성공에 대한 분개 그 이상이 아니다. 앞서 말한<아이콘> 기사에서 필립 스탁이 격앙된 감정으로 내뱉은 말을 살펴보자. “요즘은 아무나 디자이너고 무엇이나디자인이다… 예전에 디자인이 하찮고 무가치한 것이었을 때는 그런 상황에 맞서 싸워나갈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좋은 디자이너들이많았다.” 이 말은 이제 디자인은 그 마술적인 힘을 잃었으며, 누구나 디자인에 대해 한 마디쯤은 할 수 있게 되었음을 뜻한다.하지만 필자와 같은 디자인 전문가만이 애플 신제품에 열광했어야만, 디자인이 지금보다 더 특별할 수 있었을까?

디자인 평론가이자 런던 디자인뮤지엄의 초대 관장인 스티븐 베일리는 전반적으로 보다 내용 있는 비판을 제기한다. 그는 은총을 잃은디자인의 타락을 탄식하면서, “성자에서 죄인으로, 산업 미술의 품위를 높이는 작업에서 멍청한 디자이너 체어로의 급속한추락”이라고 이를 표현하였다. 디자인이 오늘날처럼 “관심을 끌기 위한 천박함 attention-seeking frivolity”의 표상이 아니라 “시각적으로 표현된 지성”을 대표했던 지나간 시대를 애타게 그리워하는 것이다.
또한 뉴욕현대미술관 건축디자인 부문의 큐레이터인 파올라 안토넬리(Paola Antonelli)는 최근 “이제 디자인은 시시한 일로 취급 받고 있으며, 일간지의 라이프스타일 섹션으로 밀려나게 되었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단지 이러한 견해가 디자인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재잘거리기 좋아하는 상류 계급의 우려만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디자인계에서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는 두 인물 - 재스퍼 모리슨(Jasper Morrison)과 나오토 후카사와(Naoto Fukasawa)-이 날카로운 일침을 가했다. 2006년 도쿄와 런던에서 선보인 전시회 '수퍼노멀'은 바로 이 디자인의 시시함fluff이란 쟁점에 대한 하나의 응답이라 할 수 있다.

재스퍼 모리슨은 전시회 팸플릿에 붙인 서문에서 “과거에는 하나의 직업으로 인식되지도 않곤 했던 디자인이 이제는 공해의 주범이되었다. 번지르르한 라이프스타일 잡지와 마케팅의 힘에 입어, 색상이나 형태, 깜짝 효과를 동원해 물건을 가능한 눈에 확 띄도록만들기 위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성찰하였다. 그는 더 나아가 디터 람스의 예를 들어 “디자인을 디자인이게 그냥 내버려두는 접근법이 앞으로 더욱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얘기한다. 이 말은 디자이너가 흔히 디자이너답다고 여겨지는 ‘화려한 장식’에서 벗어나 디자인하도록 노력함으로써, 사물의본질에 접근하고 역사적인 맥락 안에서의 그 적합한 위치를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사물의 사회 안에서 자신의자리’를 아는 물건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전에도 모리슨은 디자인의과잉으로부터 디자인을 구해내자는 활동을 펼쳤었다. 디자인이 여피족이나 얄팍한 포스트모더니즘과 한 패를 이루었던 90년대 초반‘디자이너 시대’에 반대하는 저항이 한창일 때, 그는 디자인의 본래 위치와 모습을 되살리고자 힘썼다. 분명 그의 이러한 고민어린 시도는 쓰레기가 활개를 치는 이 시대에 참고할 만한 핵심 포인트를 제시해 준다 할 수 있다.

안티-스터프(Anti-stuff)
디자이너들이 너무 피상적인 방식으로 외견에만 치중한다는 비난은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는 얘기다.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디자이너들이 자기 스스로를 지구에 쌓여가는 쓰레기들을 만들어낸 장본인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디자인이 환경 문제의 일정부분 책임이 있다는 환경론자들의 우려에 대해 공감하는 디자이너들이 점점 더 늘고 있다.

우선 필립 스탁은 마치 죄를 회개하는 광대처럼 (앞서 말한 <아이콘> 지의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내가디자인하는 것은 아무 쓸모 없는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 일에 자부심을 느끼거나 흥미를 갖지 못한다. 나는내가 하는 일이 매우 부끄럽다…” 
스티븐 베일리 역시 디자인계가 처한 권태와 그 불편한 위치를 ‘선택의 역설’이라는 맥락에서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더 이상 디자이너는 선택의 바다에서 쓸데없는 찌꺼기를 걸러내는 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는 과잉과 범람에 기여하고 있을 뿐이다.” ( - 그의 글 ‘의자의 전쟁’중)

소비주의에 일조하는 디자이너의 역할에 대한 비판 역시 새로운 것이 아니다. 밴스 패커드(VancePackard)는 1960년에 발표한 저서 <낭비의 제조자들 The Waste Makers>에서 상품 마케팅의‘계획적 구식화(planned obsolescence)’ 전략을 강력히 비판하였으며, 70년대에 빅터 파파넥(Victor Papanek)은 사회적 책임 의식을 갖는 디자인 작업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배턴은 90년대 나이젤 화이틀리(Nigel Whiteley)까지 이어져 왔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새로운 현상은 반소비주의적 의제가 비판적인 경향을 지닌 주변부의 디자이너뿐 아니라 주류 디자이너들에게까지 환영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우려는 불필요한 물건들이 과잉 생산되는 데 디자이너들이 일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디자인의 스타일링 작업은 구매 충동을자극하는 미적 조작의 형식이란 혐의를 받고 있다. 그와 동시에 혁신은 종종 무의미한 특징을 약간 비트는 것이나 매한가지라 비판받고 있다. 물건이 너무 많으면 선택의 여지 또한 너무 과한 법이다. 안티 플러프 논쟁이 디자인의 사회 순응에 대한반작용이라면, 안티 스터프는 환경론이 디자인에 자리하게 되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디자인 바깥의 비평가들이 칼을 갈고 있는 것처럼, 디자이너들은 자기 의심과 자기 혐오로 고통을 겪고 있다. 디자인에 대한 애정어린 관심은 기복을 보여왔지만, 이제는 몇 가지 변화가 일어남으로써 디자인 왕국은 그 자신을 방어하기에 곤란한 상황과 지적혼란에 처하게 되었다.

첫째, 이제까지 디자인의 국경은 전통적인 영역을 넘어순조롭게 확장되어 왔다. 기업은 최고 의사 결정에 있어서 디자인을 중요한 요소로 다루고 있으며, 공공 부문의 서비스를 개선하는데 있어서도 디자인은 가장 유력한 주어이다. 이제 ‘디자인’ - 심지어 전문적인 디자인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에 의해서도실행되는 -은 이전보다 훨씬 넒은 활동 영역을 포괄하고 있다. 둘째, 예전에는 분명했던 분야 간의 경계가 점점 희미해지고 시대에뒤떨어진 것이 되고 있다. 예를 들어 제품, 서비스, 커뮤니케이션, 소매 등의 요소들이 포함된 하나의 행위를 디자인할 때,그것을 개별 분야로 다룰 때보다 경험적인 통일성은 훨씬 중요하다. 토마스 헤더윅(Thomas Heatherwick)이예술가인지, 디자이너인지, 건축가인지를 묻는 게 과연 얼마나 유용한 질문이겠는가?

디자이너들의 ‘미션 크립(mission creep; 한 기구나 조직의 임무가 무제한 확장되는 현상)’을 비난하는 이들도 있고,디자이너들이 장밋빛 약속을 남발하는 반면 그 실천은 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이들도 있다. ‘디자인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단지 대학 1학년 세미나 수업용 질문이 아니라, 디자인 잡지 편집자들을 위한 질문이 되었다. 이제 디자인이란 말은 굉장히 넓고 느슨하게 쓰이고 있어, 그 의미의 상당 부분이 해체되었다. 이러한 난국을 뚫고 나가고자 한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이 중대하고 까다로운 질문들에 답해야만 할 것이다.

미디어에 의해 조성된 시시한 감상주의 대신 디자인이 가져야 할 건설적이고 대안적인 외연은 무엇일까? 소비주의 시대 그리고소비주의에 있어서 디자이너의 전범을 보여주는 명확한 사례가 있을까? 디자인의 다양한 활동 영역을 예전의 분야간 구분보다 더유용하게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저항을 비켜가고자 한다면 디자인의 모든 외연을 방어할 것인지,아니면 특정한 영역만을 방어할 것인지에 대한 관점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이제는 우리가 지지하고자 하는 대상과 혹독한 비난을받아 마땅한 대상 간의 차별 지점을 이끌어내야 할 때이다.

 


케빈 맥컬래프(Kevin McCullagh)는 런던의 상품전략 컨설팅회사 플랜(Plan)의 대표다. 그는 디자인, 마케팅, 엔지니어링뿐 아니라 학계에서도 활동하였으며, 디자인 전문기업 시모어파월의포어사이트(Foresight) 팀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케빈 맥컬래프가 디자인, 마케팅, 기업전략 부문의 컨설팅 작업을진행했던 기업으로는 포드, HP, 노키아, 오렌지, 삼성, 쉘, 유니레버, 야마하 등이 있다.

Get Inspired! at 2015. 12. 23. 02:07